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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숲에서 길을 찾은 춘풍이

옛날에 춘풍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는 원래 유교를 공부하다가 원불교에 관심이 생겨서 소태산 대종사를 찾아갔지.

춘풍이는 대종사를 만나자마자 마치 옛날의 공자님을 만난 것처럼 놀라웠대. 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걱정이 있었어. 불교가 '공허함'과 '비움'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부모님이나 나라를 소홀히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지.

대종사는 춘풍이의 걱정을 듣고 이렇게 설명해줬어. 마치 나무에 뿌리와 가지가 있는 것처럼, 진리에도 두 가지 부분이 있다고 했어. '비움'은 나무의 뿌리같은 것이고, '인(어진 마음).의(올바름).예(예절).지(지혜)'는 나무의 가지와 잎사귀 같은 거래.

대종사는 또 이렇게 말했어. 유교의 가르침 속에도 '비움'의 의미가 들어있대. 마치 컵 안을 비워야 새로운 물을 담을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을 비워야 진정한 선(善)을 담을 수 있다는 거야.

한번 생각해 볼까?

이 이야기의 핵심은 모든 종교와 가르침의 근본은 같다는 거야.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달라도, 그 속에 담긴 진리는 하나라는 걸 알 수 있어. 또한 진정한 가르침은 '비움'과 '실천'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지. 마치 나무가 뿌리와 가지 모두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야.

이 이야기는 을 쉽게 풀어낸 거야.

대종경 원문

변의품 20장

이 춘풍이 유가의 규모를 벗어나 출가하여 대종사를 뵈옵고 사뢰기를 "제가 대종사를 뵈오니 마음이 황홀하와 삼천 제자를 거느렸던 공자님을 뵈온 것 같사오나 원래 불교는 유교 선성들이 수긍하지 아니한 점이 있사와 늘 마음에 걸리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 점이 무엇이던가." 춘풍이 사뢰기를 "불교는 허무 적멸을 주장하므로 무부 무군(無父無君)이 된다고 하였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의 본의가 영겁 다생에 많은 부모와 자녀를 위하사 제도의 문을 열어 놓으셨건마는 후래 제자로서 혹 그 뜻에 어그러진 바가 없지도 않았으나, 앞으로는 모든 법을 시대에 적응하게 하여 불교를 믿음으로써 가정의 일이 잘 되게 하고, 불교를 믿음으로써 사회 국가의 일이 잘 되도록 하려 하노니 무부 무군이 될까 염려 하지 말 것이며, 또는 주역(周易)의 무극과 태극이 곧 허무 적멸의 진경이요, 공자의 인(仁)이 곧 사욕이 없는 허무 적멸의 자리요, 자사(子思)의 미발지중(未發之中)이 허무 적멸이 아니면 적연 부동한 중(中)이 될 수 없고, 대학의 명명덕(明明德)이 허무 적멸이 아니면 명덕을 밝힐 수 없는 바라, 그러므로 각종 각파가 말은 다르고 이름은 다르나 그 진리의 본원인즉 같나니라. 그러나, 허무 적멸에만 그쳐 버리면 큰 도인이 될 수 없나니 허무 적멸로 도의 체를 삼고 인.의.예.지로 도의 용을 삼아서 인간 만사에 풀어 쓸 줄 알아야 원만한 대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