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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있을 때나 움직일 때나, 똑같이 소중한 공부

옛날에 스승님께서 제자들에게 진정한 공부의 의미를 알려주셨어. 많은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경전을 읽거나 명상을 하는 것만 공부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스승님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했어.

마치 자전거를 배우는 것처럼, 이론만 알면 안 되고 실제로 타보면서 연습해야 하는 것처럼 진짜 공부는 일상생활 속에서 해야 한다고 했어. 예를 들어 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공부에만 집중하고, 운동할 때는 운동에만 집중하는 거야. 마치 여러 개의 그릇에 물을 따르듯이, 한 번에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는 거지.

스승님은 송규라는 제자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송규는 특별히 오랫동안 절에서 수행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자기가 맡은 일을 하면서도 늘 배우려는 자세로 지냈지. 그 결과 송규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었고, 옳고 그른 것을 잘 판단할 수 있게 되었어. 심지어 바쁜 와중에도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도 잘 쓰게 되었대.

한번 생각해 볼까?

이 이야기의 핵심은 진정한 공부는 특별한 시간이나 장소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거야. 책상에 앉아있을 때든, 운동장에서 놀 때든, 집에서 심부름을 할 때든 모든 순간이 배움의 기회가 될 수 있어. 중요한 건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집중하는 자세야.

이 이야기는 을 쉽게 풀어낸 거야.

대종경 원문

수행품 9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보통 사람들은 항상 조용히 앉아서 좌선하고 염불하고 경전이나 읽는 것만 공부로 알고 실지 생활에 단련하는 공부가 있는 것은 알지 못하나니, 어찌 내정정(內定靜) 외정정(外定靜)의 큰 공부 법을 알았다 하리요. 무릇, 큰 공부는 먼저 자성(自性)의 원리를 연구하여 원래 착(着)이 없는 그 자리를 알고 실생활에 나아가서는 착이 없는 행(行)을 하는 것이니, 이 길을 잡은 사람은 가히 날을 기약하고 큰 실력을 얻으리라. 공부하는 사람이 처지 처지를 따라 이 일을 할 때 저 일에 끌리지 아니하고, 저 일을 할 때 이 일에 끌리지 아니하면 곧 이것이 일심 공부요, 이 일을 할 때 알음알이를 구하여 순서 있게 하고, 저 일을 할 때 알음알이를 구하여 순서 있게 하면 곧 이것이 연구 공부요, 이 일을 할 때 불의에 끌리는 바가 없고, 저 일을 할 때 불의에 끌리는 바가 없게 되면 곧 이것이 취사 공부며, 한가한 때에는 염불과 좌선으로 일심에 전공도 하고 경전 연습으로 연구에 전공도 하여, 일이 있는 때나 일이 없는 때를 오직 간단 없이 공부로 계속한다면 저절로 정신에는 수양력이 쌓이고 사리에는 연구력이 얻어지고 작업에는 취사력이 생겨나리니, 보라! 송 규는 입문(入門)한 이래로 지금까지 혹은 총부 혹은 지방에서 임무에 노력하는 중 정식으로는 단 삼개월 입선(入禪)도 못하였으나, 현재 그의 실력을 조사하여 본다면 정신의 수양력으로도 애착 탐착이 거의 떨어져서 희.로.애.락과 원.근.친.소에 끌리는 바가 드물고, 사리에 연구력으로도 일에 대한 시비 이해와 이치에 대한 대소 유무를 대체적으로 다 분석하고 작업에 취사력으로도 불의와 정의를 능히 분석하여 정의에 대한 실행이 십중 팔 구는 될 것이며, 사무에 바쁜 중에도 써 보낸 글들을 보면 진리도 깊으려니와 일반이 알기 쉬운 문체며 조리 강령이 분명하여 수정할 곳이 별로 없게 되었으니, 그는 오래지 아니하여 충분한 삼대력을 얻어 어디로 가든지 중인을 이익 주는 귀중한 인물이 될 것인 바, 이는 곧 동정간에 끊임 없는 공부를 잘한 공덕이라, 그대들도 그와 같이 동정 일여(動靜一如)의 무시선(無時禪) 공부에 더욱 정진하여 원하는 삼대력을 충분히 얻을지어다."